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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법

드라마 작가의 자존심 - 김수현 작가

by moviefinder 2023. 6. 13.

출처 : 방송작가협회

강사 : 김수현

주제 : 드라마작가의 자존심

 

솔직히 말씀드리면 제가 36년 동안 강의를 단 한 번도 안 한 것은, 잘나서가 아니가 이런 일에 너무 서툰 사람이기 때문에 도망 다닌 거예요. 다른 사람이 한 시간 동안 할 얘기를 저는 5분이면 끝냅니다. 그러니 강의를 어떻게 다니겠어요. 강의 요청은 물론 많습니다. 강의는 저하고 안 맞는다 해서 그동안 사양하고, 고사하고, 지금까지 36년을 왔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제가 대형 사고를 치는 날입니다.(웃음)

강의라는 것과 글을 쓴다는 것은 둘 다 말로 하는 일이죠. 그런데 쓰는 것과 말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예요. 제가 여기 나오기 전에 너무 걱정이 돼서, 제 홈페이지를 봤어요. 몇 개월 전에 ‘60초 인터뷰’라고 해서 질문을 받은 게 있는데 답변을 일일이 달았었거든요. 그걸 처음부터 끝까지 훑어봤더니 글로는 너무너무 대답 잘했어요. 그런데 말은 그렇게 할 자신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양지하시고, 제가 침묵으로 들어가면 얼른 구원해주세요. 질문을 해준다든지... 부탁합니다.

몇 일전부터 이 일이 상당한 스트레스가 됐어요. 자, 무슨 옷을 입고 나가야 될까, 여기서부터요. 지금이 환절기라서 옷 입기가 우선 복잡했어요. 보통 저는 옷 입는 문제에 대해 비교적 신경을 쓰는 편이 아니지만, 이런 자리는 그럴 수가 없잖아요. 그래서 고심을 많이 했습니다. 더울까, 추울까, 어떤 색상이 좋을까. 근데 지금 입을 수 있는 옷이 푸른색 계통 파스텔톤 투피스와 이 빨간색 투피스밖에 없어요. 생각하다가 날도 그렇고 정신이나 확 들게 빨간 걸 입자 했습니다.(웃음)

그렇게 여러 가지를 생각하면서, 이 친구들이 어떤 생각으로 그 장소에 나올까 궁금해졌어요. 어떤 분은 오다가다 길에서 만나기는 힘든 사람이니까 구경 좀 해보자 해서 나왔을 수도 있고, 또 어떤 분은 세상이 다 알게 악명 높은 할머니의 실체를 확인해보자 했을 수도 있고, 또 어떤 분들은 이 양반에게서 한 두마디는 건질 게 있지 않을까 해서 나오셨지 않을까 믿습니다. 어떻게 나오셨든지 감사합니다. 날씨도 좋지 않은데 이렇게 많이 나와 주셔서. 그런데 전 사실 조금은 떨립니다.(웃음)

오늘 저는 여러분들 중에서 많은 숫자의 정말로 좋은 작가가 나와 주었으면 하는 열망에서 제가 생각하고 있는 작가에 대해 얘기해 드리고 싶습니다. 이것은 교육원 강의에서도 많이 들으시겠지만 저는 제 식대로 하겠습니다.(박수)

저는 드라마작가라는 타이틀을 붙이고 40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이 일을 하고 있는 ‘노인’입니다. 노인은 지혜자란 말도 있듯이, 제가 살아오면서 생각하고 결론지은 재산이 있습니다. 저는 인생을 ‘순간순간의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큰 일이건 작은 일이건간에. 오늘도 여러분들은 여기를 갈까, 남자친구를 만날까 그랬을 수도 있어요. 그럴 때 이 장소를 선택했습니다. 그래서 어떤 얘기를 듣고 ‘아, 잘 왔다. 저 얘기는 나에게 약이 되겠다.’하면 옳은 선택을 한 거예요.

드라마작가를 목표로 하거나 아니거나를 불문하고, ‘나는 어떤 인간의 모습으로 나에게 주어진 삶을 살다 갈 것인가’에 대해 깊이, 열심히 생각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생각을 해서 ‘이렇게 살고 싶다’고 결정을 하게 되면 그 쪽으로 노력하게 됩니다. 그리고 길게 살다 보면, 열심히 한 쪽으로 매진하다 보면 그 모습이 될 수 있습니다. 감히 저는 그렇게 살아 왔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제 자신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옳았다고 믿습니다. 이런 얘기 김새죠?(웃음)

그렇다고 해서 이중구조의 인간이 되라는 얘기는 결코 아닙니다. 저는 여러 개의 얼굴을 가진 사람을 혐오합니다. 저는 단 하나의 얼굴 밖에 없습니다. ‘남이 나를 어떻게 볼 것인가’는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저는 데뷔할 때부터 싸우면서 일을 시작했어요. 그 싸움이란 다름 아닌 ‘내가 수긍할 수 없는 어떠한 일을 강요받았을 때’ 참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의견이 틀릴 때 그 자리에서 즉각즉각 얘기하는 바람에 어른들로부터 충고도 많이 받았어요.

저는 지금까지 다른 사람에게 잘 보여야겠다는 인식은 안했습니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는 나의 모습, 내가 원하는 나의 모습은 확실히 있습니다. ‘어떤 모습의 김수현이고 싶은가’가 저의 유일한 허영입니다.

저를 한마디로 집약해 말한다면 ‘자존심 결사 사수’입니다. 제대로 된 자존심을 사수한다는 것은 자기 자신에게 엄격하다는 것입니다.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서는 그것에 맞게 자기 자신의 모습을 정리정돈하고, 그것에 맞는 능력을 갖춰야 합니다. 열등감은 불필요합니다. 열등감은 피해의식을 불러오고 피해의식은 쓸데없는 자존심을 부추기게 됩니다.

작가라면 자기 작품이 자기 자존심에, 가족에게, 친구에게 부끄럽지 않아야 합니다. 그런 작가가 되어야 합니다. 저는 당당하게 살아왔고, 지금도 당당하고, 앞으로도 계속 당당하게 갈 것입니다.

자존심을 사수하면서 작가로 활동할 수 있으려면 책을 읽으세요. 요즘 사람들 너무너무 책을 안 읽습니다. 우리 세대 작가, 우리의 선배 작가는 책을 많이 읽어 기본적인 틀이 틀립니다. 선배 작가들은 기초가 튼튼하고, 작가소양이 풍부하셨습니다.

고전을 읽으세요. 동화에서부터 시작해 신화로 넘어가면 좋습니다. 모든 세계 문호들의 책을 섭렵하세요. 좋은 책은 두 번, 세 번 열심히 읽으세요. 그 다음에 현대문학(1930년대부터)을 훑는 식으로 모든 분야의 책을 다 읽으세요. 이 작업에 필요한 책이 한정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책이라고 생긴 것은 다 보세요.

책을 안 읽으면 작가로서의 재산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작가는 무궁무진하게 풀어낼 수 있는 창고가 준비되어 있어야 합니다. 기본소양을 갖추지 않고 작가가 되겠다고 하는 것은 굉장히 오만합니다.

책을 볼 때 인물 이름, 사건 등을 기억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냥 읽어 넘어가고 잊어버리세요. 그러나 없어지지 않습니다. 연기처럼 내 창고에 스며들어 있습니다. 드라마작가가 모든 인생을 다 경험하고 살 수 없습니다. 우리는 간접경험을 직접경험처럼 내 것으로 받아들여 소화시켜서 토해내는 작업을 해야 합니다.

고전으로 남아 있는 책들은 인간 본연의 문제를 천착(천착)합니다. 시대가 아무리 변해도 인간은 변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본질은 같습니다. 드라마작가는 시대가 어떻게 흘러가든지 그 기본을 버리면 안 됩니다. 우리는 그것을 가지고 작업해야 합니다.

독서는 나의 닫혀있던 감성의 문을 열어주고, 나의 부족했던 사고 능력을 확장시켜주고, 사물에 대한 이해능력을 깊게 만들어 줍니다. 이 모든 것이 나의 창작활동에 반드시 첫째가 되는 재산입니다.

세상에는 공짜가 없습니다. 저는 노력합니다. 저는 기본 재산은 가지고 있었습니다. 책을 많이 봤고, 작가가 되고 나서도 끊임없이 책을 봤습니다.

작가 자신이 뒤틀리지 않은 가치관을 확립하고, 균형 잡힌 성격을 갖춰야 합니다. 작가의 정신이 건강해야 합니다. 요즘 너무 이상한 드라마가 많습니다. 시청률이 자존심이라 믿는 작가에 의해 만들어지는 인격장애 드라마가 양산되고 있습니다. 자존심은 스텝들이 일하는 데 지장이 없게 대본을 보내고, 나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은 대본을 쓰는 게 바로 자존심이라 생각합니다. 내 일은 나 자신과의 투쟁입니다. 감독이 죽으라면 죽는 시늉하고, 대본 고치라면 고치면서 작가생활 하지 마세요. 재능과 실력과 능력을 갖추세요.

저는 시청자의 수준을 제 수준에 맞춰 놓고 씁니다. ‘나같은 사람이 본다.’고 생각하고 씁니다. 작품은 곧 작가의 수준입니다. 저는 수준 높은 작품을 원합니다.

작품은 치밀하고 또 치밀해야 합니다. 엉성하게 작업하지 마세요. ‘세공’으로 여겨야 합니다.

이야기꾼의 재능은 물론 있어야합니다. 이야기꾼이 되려면, 인물들을 일단 입체적(성격, 성장과정, 환경, 목표 등)으로 만들어 놓으세요. 그러면 이 인물들이 살아 저절로 얘기가 나옵니다.

나오는 인물의 모든 행위에 대해 보는 사람들이 납득할 수 있어야 합니다. ‘왜’ 라는 질문에 작가가 대답할 수 있어야 됩니다.

기본적인 필력은 있어야 합니다. 작가가 검증을 받는 것은 평생이 걸린다고 생각하세요.

작품 한 두 개로 인해 교만해 지지 말고, 늘 겸손해야 합니다.

드라마를 가지고 폼 잡지 말고, 쓸데없는 짓 하지 마세요. 드라마는 내용이 있어야 됩니다.

나오는 인물 모두에 대한 이해, 연민, 애정이 없다면 드라마작업을 포기하세요. 체온이 없는, 향기가 없는 드라마밖에 나올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살인마 유영철의 보도를 보고 그냥 ‘무서워’, ‘나쁜 놈이구나.’하고 끝나면 작가가 아니에요. 어떤 경우에도 그 뒤를 궁금해 하고, 이해하려 하고, 알려고 하는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시청률과 작품의 질은 별개입니다. 보편적이고 안정적인 가족 홈드라마보다 시청률이 떨어지긴 했지만, 저는 제가 갖고 있는 IQ, EQ, MQ, CQ(문화지수)를 총 동원해서 썼던 작품이기 때문에 ‘완전한 사랑’에 애착을 갖고 있습니다. 작품은 저처럼 쓰세요. 시청률에 신경 쓰지 마세요. 그건 아무 것도 아닙니다.

끝내도 돼요? 시간 지났어? 그럼 여기서 스톱해.(웃음)

지금까지 얘기가 중언부언했을 겁니다. 미안합니다. 그래도 어떻게 한 시간이나 됐냐? 이건 기적이야 정말.(웃음, 박수)

마지막으로 총 결론을 낼게요. 어떤 경우에도 내 자존심에 상처를 내가면서, 자존심을 내놓고 거래하지 않아도 되는 작가가 되십시오. 그러려면 많이 갖추어야 됩니다. 자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박수)

<질의응답>

선생님의 작품에 간혹 비슷한 인물이 나온다고도 하는데 사실인지. 의도적이라면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지.

비슷한 인물이라는 게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지만, 공통적으로 제 작품에 나오는 인물이라면 똑똑하고 잘 따지고, 안 지고, 말 잘하는 여자 캐릭터를 말하는 것 같은데, 의도적이지 않아요. 나는 말 못하는 드라마가 너무 싫어요. 할 말은 반드시 해야 하고 정확하게 해줘야 해요.

작가의 의지가 아닌 이상 대본을 한 자도 수정을 못하게 하신다는데 대사 때문에 연기자들이 힘들어하지는 않습니까? 애드립하면 어떻게 됩니까?

애드립하면 죽어요. 대본은 못 고쳐요. 재미있는 사실은 고칠 수가 없다는 거예요. 제 작품은 토시하나만 고쳐도 말이 안 됩니다. 그래서 배우들이 포기해요.

배우가 왜 고칩니까? 작가는 나예요. 배우는 내가 쓴 것을 최선을 다해 표현하는 역할을 해야 할 뿐입니다. 감독도 안 됩니다. 감독도 못 고쳐요.

‘언어의 연금술사’라고 할 만큼 좋은 대사의 비결은?

비결은 없어요. 열심히 연구해서 대사를 쓰는 것 같아요? 그렇지 않아요. 그냥 나와요. 내가 쓰는 말이고, 내가 아는 말들이예요.

여러분들, 대본을 쓸 때 컴퓨터 자판에 글자만 찍지 마세요. 인물들이 그림으로 다 잡혀야 돼요. 그래야 작업이 겉돌지 않습니다.

작은 녹음기를 들고 다니며, 생각날 때마다 녹음을 하신다던데?

사실 무근입니다. 나는 메모도 없습니다.

드라마작가가 되겠다고 하는 사람에게 ‘이것만은 꼭 해라’하는 게 있다면.

여태 한 얘기가 그거야.

지금까지 쓰신 드라마 속 인물들 중에 가장 애착이 가는 인물이 누구입니까.

이런 질문은 바보같다고 생각해요. 내가 어떤 작품을 쓸 때는 내 모든 것을 투사시켜 만드는 인물을 만듭니다. 어느 인물이 더 낫고 어느 인물이 못하고는 없습니다.

작가가 아니었다면 어떤 사람이 되었을까요?

작가는 생업을 위해 시작했습니다. 그게 아니었다면 모든 조건이 괜찮았다면 아마 지금쯤 판, 검사가 되었을 겁니다. 그러나 후회는 없습니다. 아주 적성에 잘 맞는 일이 제 일이 돼서 행운이었고, 많이 감사합니다.

슬럼프에 빠지신 적은 없으세요?

슬럼프라는 것은 나 자신이 슬럼프로 생각하느냐, 남들이 그렇게 생각하느냐의 차이가 있습니다. 남들이 슬럼프라고 생각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언제나 잘 된다면 ‘신’이죠. 잘 돼도, 못 돼도 내가 한 일예요. 저는 많이 속상해 하지도 않아요. ‘이번엔 아니네.’ 정도예요.

방송현실의 변화에 따른 차세대 작가의 나아갈 길에 대해서 말씀해 주십시오.

사회현실이 어떻든지 드라마는 인간에 대한 천착이기 때문에 변할 것이 아닙니다. 작가라면 시대가 망가질수록 망가지기 전의 우리의 모습을 그려줘야 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제가 썼던 특집극들은 인간을 말하는 것에서 벗어난 적이 없습니다.

다른 장르의 작가들보다 드라마작가가 더 좋은 점이 있다면?

내 경우에는 환금성. 작가답지 않은 발언인가?

신인작가에게 가장 바라는 점.

어떻게 하면 빨리 작품을 맡아서 빨리 뜰 수 있을까를 생각하지 마세요. 작가는 생각이 멋있어야 돼요. 작품다운 작품을 쓰는 작가들이 많이 나오기를 염원합니다.

감동과 재미 두 마리를 다 잡을 수 없다면 어떤 것을 선택하시겠는지.

법정드라마의 재미와 멜로드라마의 재미는 틀려요. 재미, 감동... 둘 다 있으면 아주 좋죠. 그러나 보는 동안 어떤 무엇인가 흡인력이 있는 게 없다면(그것을 재미라 말해도 좋습니다), 채널을 고정시킬 수 있는 흡인력이 없다면 마지막에 감동도 없어요.

작품을 쓸 때 무엇을 가장 염두에 두시는지.

캐릭터 만드는 게 가장 중요하죠. 저는 심플한 데서 출발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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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심플해요.

시청률에 대한 생각

작가가 시청률 좀 올려보자, 해서 오르는 게 결코 아닙니다. 시청률이 낮고 싶은 작가는 없습니다. 뚜껑은 열어봐야 합니다. 시청률엔 신경 쓰지 말고 작업하세요. 그리고 여럿이 모인 합동작업이 아니라 혼자서 작업할 수 있는 작가가 되세요. 그래야 그게 나의 작업이고 내 일입니다. 합동작업은 모자이크에 지나지 않습니다. 실력들을 갖추세요. 드라마라는 것은 흐름인데, 음악과 같은데, 어떻게 이 사람 저 사람이 작업을 하는지... 불가사의해요.

그 많은 돈을 어디에 쓰시는지? 당신을 위해 어떻게 쓰시는지?

맞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이기 때문에 모든 것이 돈으로 환산돼요. 제가 받는 대우는 제 가치일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쌓아 놓지는 못했습니다. 나눠 쓰는 편입니다. 많이 씁니다. 좋은 걸 좋아하고, 예쁜 걸 좋아합니다. 그런데 내 자신을 위해 쓰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선생님의 인생관과 가치관과 거기에 영향을 준 사람이나 경험?

인생관, 가치관은 이미 장황하게 얘기했습니다. 작품이 곧 나예요. ‘자존심을 사수하라’가 나의 가치관입니다.

나는 무수한 독서를 하면서, 지금 나의 모습을 책에서 건졌어요.

요즘 엽기적인 발상이나 특이한 발상 풍조로 흘러가는 듯한데, 공모에 대한 생각과 조언을 해주세요.

저는 그냥 제가 썼는데... (웃음)

풍조, 시류를 신경 쓰지 말아요. 좋은 대본이면 됩니다. 엽기가 왜 나왔을까요? 자극 때문에 나온 거예요. 자극으로 한판 승부를 보자는 건 그만큼 자기 작품에 자신이 없기 때문이에요. 정말 자기 작품에 대해 창피하지 않아야 해요.

나는 지금 풍조에 대해 걱정이 많습니다. 콩쥐팥쥐, 신데렐라 다 똑같아요. 그것도 지능이 낮은 콩쥐팥쥐, 인생을 날로 먹자는 신데렐라. 이런 것을 써서 사람들에게 무엇을 줄 수 있을까요? 다른 것들을 생각하세요. 작가는 작가다워야 합니다. 작가처럼 생각해야 합니다. 요즘엔 아무나 드라마작가 된다고 그러잖아요. 너무너무 내공도 없고 기초도 없는 작가들을 마구마구 양산했고, 그런 감독들을 마구 양산한데다가, 방송사에 채널이 너무 많기 때문인 것 같아요. 양질이 아닌 엉성한 드라마들이 시간을 메울 수밖에 없잖아요. 이건 문제가 있습니다.

드라마를 얕보지 마세요. 제가 제일 싫어하는 얘기는 ‘드라마니까’예요. 그 소리는 마치 ‘쓰레기니까’로 들려요. 대단히 자존심 상하는 일입니다. 좋은 작가들이 돼 주세요. 기대합니다.(박수)

우리 이사장님께서 공모준비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해 답변하시겠답니다.

(박정란 이사장 추가답변) 제가 방송작가 중에서는 공모심사를 많이 한 사람이에요. 경험이 많으니까 얘기하는데요, 엽기라고 해서 절대 공모에 당선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결국은 작가들이 심사위원이 됩니다. 작가들은 작품성이 있고, 감동이 있어야지 그것을 당선시킵니다. 지금 MBC도 KBS도 최우수작이 없는데, 왜 최우수작이 없냐... 그만한 감동을 줄만한 작품성이 있는 작품이 없기 때문입니다. 심사할 때 가능하면 여러분에게 희망을 줘야하고 어지간하면 당선시키고 싶지만, 그런 수준의 작품이 갈수록 떨어집니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하면 당선하나’ 이런 궁리를 하지 마시고, 좋은 작품을 쓰세요. 심사위원을 감동시킬 수 있는 좋은 작품.제가 감히 공언하니까 그렇게 준비해주시면 되겠습니다.(박수)

마무리 말씀 한마디 해주세요.

제가 많이 떨며 나온 것보다는 우선 시간을 메꿨으니까 성공으로 알고 가겠습니다.(웃음, 박수) 시간 낭비가 아니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박수)